아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더라도 디아즈는 ‘새로운 음악’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긴 라이브를 계속 보고 있는 느낌이지요. 긴 연주를 하는 것은 체력도 필요합니다만, 테크닉도 필요하잖아요? 그 기술을 가지고 있고 초절기교가 가능하더라도 좀처럼 하지 않는. 결정적인 컷은 찍지 않는. 조마조마한 느낌. 조용하지만 흉폭성이 있습니다.
고바야시 아이다씨가 말씀하신 음악이라는 의미와는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그 롱 테이크를 보고 있자면 어떠한 일정한 파도가 계속 이어지고 그 파도에 태워진 듯한 점점 쾌감으로 바뀌어 나가지요. 일정한 리듬이 새겨진다고 할까.
아이다 같은 음을 울리게 한다. 같은 악절을 듣게 하는 것으로 인간의 감동에 호소해 옵니다. 지속되는 음악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씬마다 무언가 계속 울리게 하면 된다고 할까. 소리도 안 나오고, 음악도 안 나옵니다. 하지만 씬 그 자체가 노래하기도 춤추기도 합니다. 그 장면이나 상황이 노래하고 있다.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고바야시 실제로 춤추는 씬도 있지요. 예를 들어 암흑 저편에서 한사람이 빛 속에서 춤추던 컷은 감동적입니다.
아이다 그 감동은 도대체 뭘까요. 사람이 춤추는 것만으로도 좋은.
고바야시 그리고 음악은 안 나오지만 등장인물이 노래하는 씬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이는 ‘프롬 왓 이즈 비포’(Mula sa kung ano ang noon, From What Is Before / 2014) 등 다른 작품에서도 보여집니다. 노래하는 씬이란 보통 그 인물의 심상(心象)을 투영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디아즈는 그런 풍으로 찍지를 않네요. 기분을 연결하여 그리지 않아요.
아이다 심상으로 가지 않는 것이 굉장해요. 음악이라고 했지만 디아즈 안에서는 ‘노래’겠지 라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노래’라는 의미는 아니니까. 영화 속에서 긴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는’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고 감정적이지요. 그래서 이 영화에 우리들은 전율하게 됩니다.
고바야시 스토리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라면 자신의 정의를 수행한다는 것을 우직하게 그려냅니다. 여기서 ‘복수한다’는 주인공 자신의 정의가 있고, 그전에 ‘선행’을 하지만 디아즈가 말하는 ‘파생적인 관계’에 의해 그것이 어떻게 되어 나갈지가 그려집니다.
아이다 앞에 언급했던 앙겔로프로스는 역사나 시대와 함께 흘러가잖아요. 디아즈는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있기도 해서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앙겔로프스는 전체를 그리려고 하고 디아즈는 개체를 그려내려고 합니다. 수직적으로 보이지만 ‘파생적인 관계’ = 수평적 연결을 그려내는 것이지요. 피난처가 있지만 점점 분해해 나가는 예를 들어 도쿄 돔의 지붕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고바야시 그리고 마지막에 개체가 남는.
아이다 하지만 내쳐진 느낌은 아니지요. 차갑지도 않고 상냥합니다. 디아즈는 듣기 싫겠지만 ‘흉폭하지만, 상냥한 감독’이지요.
‘떠나간 여인’(2016 필리핀)
감독・각본・촬영・편집:라브 디아즈
출연:차로 샌토스-콘시오/ 존 로이드 크루즈/마이클 데 메사
10월14일(토)부터 시아터 이미지 포럼 외 일본 전국 순차 로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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