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아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빛의 사용도 이전 작품과는 다르기 때문인지 창문에 비추는 것도 한층 두드러져요. 반사도 있고. 이처럼 화면이 겹쳐집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 상징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현재나 과거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연결된 것이야. 그것이 에드워드 양의 세계.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그렇지만 그 전 작품에서도 거울이 중요한 역할을 해요. 거울에 비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얼굴이 반대로 비춰지죠. 그것만이라면 수학적으로 접근 하는 것도 가능해요. 하지만 역시 진짜 얼굴이 아닌 다른 차원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고바야시 영점 몇초 전의 과거의 얼굴이기도 하지요. ‘공포분자’의 병원이나 ‘하나 그리고 둘’의 오피스, 어딘가 미래적이지요. 그건 뭘까요. 모리타 요시미츠의 ‘내가 낼께’ 속 병원의 표현과도 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다 구로사와 키요시의 ‘도쿄 소나타’의 직업안정소도 그렇지요. 현대로 찍었지만, 어딘가 미래적인 느낌이 드는. 여러가지 일이 일어나고 한바퀴 끝난 뒤의 미래라는 느낌이 굉장히 들어요. 한바퀴 끝나지 않으면 미래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듯한. 가상의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현재를 긍정하는 것 말고는 없어요. 무언가 끝난 뒤에, 무언가 파멸한 후에, 누군가가 죽은 후에, 그렇더라도 미래는 이어져 나간다. 그렇더라도 사람은 살아간다.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고바야시 ‘공포분자’는 어떤 한 사람만 끝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 두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 슈레딩거의 고양이 같네요. 에드워드 양은 물리학자로군요.
에드워드 양
아이다 어떤 작가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점이 그 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영화작가라는 걸 문학적인 레벨까지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문학이 아니라 물리라든가 뭐 그 쪽 계통.
고바야시 어쩌면 양자역학 쪽 사람일지도(웃음)
아이다 만화 쪽일 지도 몰라요. 에드워드 양은 데즈카 오사무를 좋아했어요. 데즈카론을 썼는데 그 내용이 좋았어요. ‘자신의 기지를 기반으로 미래의 미지를 측정하는 것은 항상 흥미진진한 것이다’라고 했어요. 진정한 에드워드 양의 세계로군요.
고바야시 시라토 삼페이가 아니네. ‘사스케’가 아니네. 데즈카 오사무의 뉴월드로군.
아이다 뉴월드일 거에요. 이 사람이 하려고 한 것을 굳이 문학적 단어를 사용한다면, ‘이후의 세계’라고 생각해요. 무언가가 끝난 뒤의 세계를 그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마작’도 이해가 잘 되요. 이후를 그린다는 것은 희망이라고 생각되지요. 그건 의지라고 할까. 끝나버려도 이걸로 끝이 아니야 라는 건 강력하지요.
고바야시 끝날 수 없어. 살아가야만 해.
아이다 세계는 계속된다고 해요. 누군가가 죽은 후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걸 어떠한 스타일 안에서 하고 있어요. ‘독립시대’로 일본에 온 에드워드 양 자신이 남긴 메시지가 팜플렛에 남아 있습니다. ‘Our troubles begin when we all failed to realize that this world is already the heaven.’라고. 우리들의 불행은 이 세상이 이미 천국이라는 걸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일까요. 이 헤븐 = 천국이 ‘미래’라는 것.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좋은 것. 그것만으로도 살 수 있다. 상상한다는 것이 크나큰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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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OPLE TALK EVENT 6월9일 참가희만( )명 성함 메일주소’
주최:A PEOPLE
‘타이완 거장 걸작선2018’
6월15일(금)까지 K's cinema에서 개봉 중. 이후 전국 순차 개봉
※에드워드 양 감독 작품은 ‘광음적고사’, ‘타이페이 스토리’,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살인사건’, ‘하나 그리고 둘’의 5작품이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