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자기의 청화, 영어로는 Blue and White.
일본인은 중국청화자기를 보면 염부(소메츠케)로군요. 좋네요.라고 칭찬하며 공감을 요구당한다.
일본인은 중국자기의 청화와 일본의 고(古)이마리로 대표되는, 염부라고 칭해지는 그릇의 카테고리를 염부라고 표현하고, 그 표현을 같은 모양의 물건에 대해 일반상식적 표현으로서 인식하기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염부도 청화도 청과 백의 대비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기본 베이스로 한 그릇이다.
그러나 일본의 염부는 400년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고, 중국의 청화는 1,000년 전에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 역사적 사실로만 보더라도 일본의 염부는 중국의 청화를 벤치마킹한 작품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의 염부는 청화라고 칭해지지 않고, 염부라고 호칭하는 걸까. 그 이유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염부라는 표현은 청화와와 달리 색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유약 아래에 그림을 그린다는 뜻. 그렇다면 제조방법을 나타내는 말인다. 어째서 일본인은 청화라고 부르지 않고 염부라고 부른 것일까.
이는 고이마리의 염부의 청과, 징더진[景德鎭(경덕진)]의 청과 비교하면 분명히 이해가 된다.
청색이 전혀 다르다. 당시 이마리의 도자기 장인들은 중국의 진더진 자기를 보고 그 청색에 반해 그 청색을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다. 기술을 습득하고자 초빙한 스승으로부터도 그 기술을 열심히 본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예품이기 때문에 그 완성도는 원재료의 질에 크게 좌우된다. 당시 일본에는 먼 이란에서 코발트 블루의 안료를 수입할 국력은 없었으리라 보여진다.
따라서 장인들은 작품을 청화라고 부르기에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 청화라고 호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따라서, 차라리 제조방법의 호칭인 염부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상상된다.
공예품, 미술품의 좋고 나쁨에는, 만드는 이의 기술, 창조력은 물론이거니와, 하늘에서 내려준 자연의 은혜인 광물, 천연물에 좌우된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몸소 선택하여, 대리석의 원석 그 자체에 조각의 디자인을 이미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시 미술품도 천지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이다.
청화초당 주인 다나카 야스나리(田中保成)